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왕립우주군 - 오네아미스의 날개 (문단 편집) == 제작 과정 == 원래는 [[다이콘 필름]]의 8분짜리 아마츄어 인디영화의 기획에서 시작했다. 아무튼 SF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오카다 토시오]]에게 야마가 히로유키가 지구가 아닌 어느 별에서 우주에 대한 꿈을 꾸는 자들에 대한 이야기의 플롯을 보여주자, 오카다는 구상을 애니메이션화하기로 했다. '왕국우주군'이라는 제목은 카페에서 [[밀크티#s-4.1|로얄 밀크티]]라는 메뉴를 보고 로얄(왕립)이라는 것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 무렵 오카다 토시오는 다이콘 필름의 여성 스태프와 바람을 핀 것이 들켜서, 도저히 [[오사카부|오사카]]에서는 살 수 없게 되자, 야마가와 함께 [[도쿄도|도쿄]]로 진출하기도 결심했다. 오카다는 도쿄의 [[반다이]]를 찾아가 3억 엔의 제작비 투자약속을 받아냈다. 건프라 팔아서 ~~떼돈을 번~~ 성공한 반다이는 이때부터 영상사업(아니메 분야)에 사업을 진출할 구상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3억엔을 덜컥 투자한 것은 아니었고, 가이낙스가 만들어온 [[https://www.youtube.com/watch?v=63SxfzDarIo|파일럿 필름]]의 휼륭한 완성도(이 파일럿만 보면 모험활극 흥행대박의 느낌이 확 온다)와 오카다 토시오의 열성적인 ~~말빨의~~ 프레젠테이션에 ~~속아 넘어간~~ 믿고 투자를 결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파일럿 필름을 만들기 위해 한 번 돈이 들어갔기 때문에 반다이의 간부들은 영화 제작을 중지할 수는 없게 되었다. 1984년 12월 24일, 야마가의 구상을 애니메이션화하기 위한 회사인 [[가이낙스]]가 설립되고 이들은 본거지를 도쿄로 옮겨서 왕립우주군이 본격적으로 제작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 부분은 출처마다 내용에서 조금 차이가 있다. 일단 가이낙스를 설립한후 반다이와 접촉해 자본 투자를 받았다고 적어놓은 곳도 있고, 반다이의 자본을 받아 가이낙스를 설립했다는 곳도 있다.) 영화의 플롯은 평소 별 볼일 없던 왕립우주군 소속 젊은이가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을 한다는 이야기로, 결국 아마추어 동영상 제작집단이었던 다이콘 필름이 첫 극장용 대작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드는 성공담이었다. DAICON 3, 4 오프닝 애니메이션도 그 내용은 알고 보면 다이콘 필름과 당시의 일본 SF업계와 오타쿠들의 내부 사정 이야기라고 오카다 토시오가 말을 한 적이 있다. 반다이가 투자를 결정한 배경에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추천이 있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기획이 어떠냐는 검토 의뢰를 받고, 투자를 망설이는 반다이 간부들에게 좋은 작품을 만들면 처음엔 적자가 나더라도 반드시 투자금은 되돌아 온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예언대로 됐다. 그리고 미야자키의 하야오의 스승이자 선배인 [[오오츠카 야스오]]는 그의 애제자 사다모토 요시유키가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드다고 하니, 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 몇 번이나 제작 현장을 방문해서 격려하고 동화 작업의 기술 지도를 해 주기도 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나우시카의 거신병 장면을 그린 안노가 마음에 들었는지 [[천공의 성 라퓨타]]에도 [[안노 히데아키]]가 활약할 만한 대목을 마련했는데 안노가 왕립우주군을 한다고 가버려서, 한동안은 일주일에 한 두 번씩 밤중에 제작현장을 찾아와서는 안노를 빼가려고 스카우트를 했다고 한다. 안노도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고 한다. [[https://fc0373.hatenablog.com/entry/2021/05/15/160839#-%E5%A4%A9%E7%A9%BA%E3%81%AE%E5%9F%8E%E3%83%A9%E3%83%94%E3%83%A5%E3%82%BF%E3%81%AE%E4%BB%95%E4%BA%8B%E3%82%92%E5%BA%B5%E9%87%8E%E3%81%AB%E6%96%AD%E3%82%89%E3%82%8C%E3%82%8B|출처]] 미야자키는 자신들의 슬하에 있는 애니메이터를 다수 왕립우주군으로 보냈고 왕립우주군은 사실상 [[가이낙스]]와 [[스튜디오 지브리]]의 합작 형태의 작품이 되었다. 하지만 미야자키는 완성된 필름을 보고 나서 뒤에서 노력했던 노인들의 숨은 공로는 그려지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실은 왕립우주군의 세계관은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의 [[안티테제]]였다. 가이낙스는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해 묘한 경쟁심에 불타고 있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년작)을 뛰어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열정으로 불타고 있었다. 그래서 [[나우시카(바람계곡의 나우시카)|나우시카]]를 이상한 [[컬트]] 종교에 빠진 소녀로 해석한 단발머리의 여주인공 리이쿠니를 등장시켰다. 또 미야자키 작품은 그려지는 인물은 그렇다고 쳐도, 사회 전반이 한 사람이 디자인한 세계였다. 둥글둥글한 디자인의 메카는 이 세계에서는 모든 기계의 디자이너가 한 사람(미야자키 하야오)이었다. 이런 점을 비판의식을 가진 가이낙스 팀은 각종 소품, 드라이버나 펜찌 연장 하나도 지구에 없는 디자인으로 새로 디자인하고, 예를 들어 화폐도 귀금속을 단위로 사용하는데, 길죽한 막대기 모양으로 길이가 길 수록 가치가 높고 부러뜨려 사용할 수 있다라는 식으로, 이 세계는 여러 명의 디자이너가 설계한 것이라는 설정에 주의를 기울렸다. 왕립우주군의 제작진은 돈을 마구잡이로 까먹기 시작했다. 한 행성의 국가, 언어, 신화, 사회, 문화 등 모든 것을 새롭게 창조한 후 그런 요소들을 작품 구석구석에 집어넣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평범한 질량이나 거리단위, 시간조차도 고유명사로 처리했다.] 거기다 애니메이션이 좋아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되었고 가이낙스까지 함께 하게 된 이들은 자신들이 창조해내는 작품속의 장면 하나하나에 모든 정성을 담아내려 했는데, 그런 정성을 쏟는만큼 돈과 시간은 소모되어 갔다. 왕립우주군을 만들던 가이낙스의 인물들은 전부 젊고 열정에 가득한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끼리 모여 정식 상업용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건 처음이었다는 점이다. 제어되지 않은 열정은 한정된 스케줄과 자본에 대한 압박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갔다. 반다이에서 투자받은 자본은 금새 동이 났으며, 가이낙스는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 모자란 제작비를 충당하기에 이른다. 당시 사장이던 오카다 토시오는 일하는 시간보다 돈빌리러 다니는 시간이 더 많았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야마가가 밝히기론 최종적으로 반다이가 제작에만 투자한 비용은 3억 6천만엔(나우시카가 이 금액으로 만들어졌다)이다, 3억엔이면 충분하니 6천만엔은 주머니 속에 챙기자고 프로듀서였던 오카다는 생각했었는데, 제작 중반 쯤에 돈이 떨어져서 5천만 엔을 빌려서 만들어 최종적으로는 4억 1천만엔의 제작비가 들었다고 한다. 물론 홍보와 배급에 들어간 비용은 별도였다. 그리고 그 5천만 엔은 고스란히 가이낙스 명의의 빚으로 남게 되었다. 결국 애초 반다이에서 받은 자금을 훨씬 초과한 돈을 들인 끝에 왕립우주군은 완성되어 극장에 상영되었다. 하지만 왕립우주군이 개봉된 1987년은 이미 이 작품이 구상되던 1984년과는 다른 시대가 되어 있었다. 가이낙스 멤버들을 키운 애니메이션 붐은 1985년을 기점으로 사그러든 상태였고, 애니메이션 붐을 이끌었던 소비층은 취미에서 멀어지거나 [[미소녀]] 캐릭터 중심의 OVA를 주 소비대상으로 삼고 있었다. 일반 관객층이 보기에는 왕립우주군의 이야기가 뭔가 거리감이 있어 보였다. 거기다 이야기가 단조롭다는 약점 또한 분명했다. 광고 및 배급을 위한 비용을 포함하여 총 8억엔 정도의 제작비를 들인 왕립우주군은 3억엔이 좀 넘는 수익만을 거두며 흥행에서 참패했다. 일본 개봉 이전에 미국에서 시사회까지 열었으나 반응은 별로였다고 한다.[* 특히나 클라이막스의 우주선 로켓 발사 장면에서는 한창 요란하고 시끄럽게 전투중일 때 인류 최초의 우주선이 발사되고, 다들 그 순간 전쟁을 잊고 로켓을 쳐다본다는 영화의 테마에도 맞는 극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 일부러 우주선이 대기권을 돌파할 때까지 소리가 나지 않는 정적 연출이 몇 초간 지속되는데, 이런 연출에 익숙하지 않은 서양 관객들은 음향사고인줄 알고 뒤를 쳐다보면서 웅성거렸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정식 극장판 개봉 시에는 로켓 발사 효과 음향이 들어갔다고 한다.] 처음 돈을 투자했던 반다이는 이후 애니메이션 사업에서 손을 뗐다.[* 대신 자회사인 반다이 비주얼이 영상 사업에서 활약한다.] 그리고 가이낙스는 빚더미 위에 올라섰다. 원래 2시간짜리 러닝타임도 반다이의 높으신 윗분들은 상영시간을 거기서 25분을 줄이라고 압박이 심했다고 한다. 캐릭터 디자인을 맡은 사다모토는 남주인공의 얼굴 디자인을 그려서 제출해도 감독이 몇 번이고 이런 느낌이 아니라고 퇴짜를 놓자, 뭔가 눈치를 채서 이번에는 감독인 야마가와 닮은 얼굴로 그렸더니 감독은 단번에 오케이했다고 한다. 당시의 젊은 시절 야마가의 사진과 비교하면 실제로 닮았다. 이 영화의 각본도 직접 쓴 야마가에게 결국 극의 주인공은 본인 이야기였던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